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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우리나라 천문학의 역사

by mama maison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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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은하는 우주가 태어난지 약 30억 년이 지나서 생겨났다. 은하는 자체 중력으로 스스로 수축하면서 각각 다른 모양을 갖게 되었다. 우리은하는 약 1000억 개의 별을 포함하고 지름이 10만 광년 정도 된다. 에드윈 허블은 이 멀리 떨어진 항성계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천문학자이다. 1923년에 그는 안드로메다 은하를 관찰하는 동안 그 안에 있는 어떤 별의 밝기를 측정할 수 있었다. 허블은 여기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그 별이 225만 광년 떨어져 있다고 추론했다. 허블은 은하의 서로 다른 적색이동을 연구한 후에 은하가 우리 은하에서 떨어진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허블의 법칙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처럼 전세계는 은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주론이라는 학문을 연구함에 우리나라도 기록을 보면 단군조선시대부터 천문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나라 천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단군조선과 삼국시대의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인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단기고사][한단고기]를 보면, 천문 현상을 관측한 기록이 12회 정도 나타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천문 현상 관측은 1145(고려 인종 23)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책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 일어난 일식이 67, 행성의 이상 현상이 40, 혜성 출현이 63, 유성과 운석의 낙하가 42, 기타 14회 등 총 226회의 전체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확인된 최초의 기록은 백제가 224년에 남긴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들은 적어도 서기 200년대 초부터 스스로 천체를 관측하고 기록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서기 801년에는 일식이 예측되었으나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의 천문학이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무용총과 각저총 등 고구려 고분의 천장에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조선 초에 만들어진 천문도에는 그 당시까지 고구려 천문도가 남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덕 여왕 재위기간동안 ㅅ운 경주 첨성대는 지금 남아 있는 천문관측대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675년에 일본에 세워진 지금의 첨성대와 같은 점성대는 백제 천문학자가 건축했다고 전해지는 데, 이로써 백제는 그 이전에 이미 천문대를 지어 천체를 관측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천문관측과 이론에 관한 기록만 풍부하게 남아 있을 뿐 유적이나 유물은 거의 없다. 다만 천체를 관측하려고 개성의 만월대 옆에 지은 첨성대가 있을 뿐이다. 고려의 천문기록은 [고려사] 천문지와 역지에서 찾을 수 있다. 천문지에는 일식 132, 월식 211, 혜성 76, 유성 547, 낮에 나타난 별이 168, 태양흑점이 34회 관측되는 등 몇천 개의 천문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역지]에는 고려의 역산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안과 청덕궁 서쪽에 관상감을 두고, 천문관측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게 했다. 또한 관천대를 축조하여 천체를 관측했다. 조선의 천문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승정원일기] 등에 실려 있다. 1395(태조 4)에는 천문도를 새로 만들어 돌에 새겼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 천문도는 1247년에 만들어진 중국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천문학이 국가의 지원을 대폭 받으며 빠른 속도로 발전한 시기는 세종 때였다. 바로 이 시기에 오목한 반구형 시계인 앙부일구가 발명되었고,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간의, 태양의 고도 측정기기인 동표, 천체 운동의 측정기기인 혼의와 혼상 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1442(세종 24)에는 일식, 월식 예보와 행성 운동 계산에 필요한 이론을 하나로 모아 완성한 [칠정산] 내편과 외편이 마련되어 조선시대의 천문학은 절정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는 천체 현상을 철저히 관측하고 엄격한 정의에 따라 기록했다. 이 사실은 관상감의 측후관이던 성주덕이 쓴 [서운관자]에 잘 나타난다. 조선시대 천문관측의 철저함을 볼 수 있는 한 예는 선조 때 천강(뱀주인자리의 일부)에 나타난 객성을 관측한 기록이다. [조선광조실록]7개월(160410~16054)에 걸쳐 총 130개의 관측 기혹이 실려 있는 이 객성은 서양에서는 케플러초신성으로 알려져 있다. 초신성의 밝기를 목성, 금성, 화성, 심대성과 비교해 변화를 관측하고, 위치와 색깔을 기록했다. 관상감의 엄청난 천문관측 일기는 구한말까지 상당량이 남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경종과 영조 때의 일부 기록만이 남아 있다.

 

현대에는 1974년에 국립천문대가 처음 생긴 뒤, 1978년에 소백산천문대에 반사망원경이 설치되면서 실질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국립천문대는 1991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부설 천문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다시 1999년에 독립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을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1973년에 국제천문학연합회의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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